[2017-03-14] 이슈타임 - 법무법인 광안 안성용 변호사…'헬조선'의 중심에서 '하면 된다'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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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
2017-07-24 15:07


 

"전문성을 갖추고 꾸준히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

언제부터인가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는 '노오력'을 해도 안 된다는 풍조가 만연해있다.
특히 헌정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을 유발한 '비선실세' 파문 등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전국민적인 좌절감은 날로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법무법인 광안의 안성용 대표변호사(사법시험 46회)는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확실하게 갖추고 성실하게 준비하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참 뻔한 말이라 느낄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조언을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 변호사는 오랜 방황과 좌절을 딛고 피나는 노력 끝에 원하는 바를 성취해낸 인물이다.
그는 분명한 꿈을 가지고 노력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공인회계사에 합격해냈으며, 공인회계사 업무를 병행하면서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돈과 백 없이도 순수한 노력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안성용 변호사는 '안 되는 건 없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방황과 도전

충청북도 보은군 시골 마을 출신인 안 변호사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청주 시내로 나가면서 그는 기나긴 방황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보은군 시골에서만 살던 그에게 청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공부도 훨씬 더 잘하고 돈도 많은 도시 아이들 사이에서 그는 평범한 축에도 끼지 못했다.
안 변호사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청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했고, 결국 대입에도 실패했다. 이후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 시절 안 변호사는 인생에 큰 변화를 준 사건을 겪게 됐다. 친형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그저 시험에 합격했을 뿐인데 갑자기 형의 신분이 바뀌고 가족·친척들의 대우가 바뀌는 것을 본 안 변호사는 큰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
'저 정도로 공부하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 안 변호사는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가 도전한 것은 공인회계사 시험이었다.
슬슬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갑자기 어려운 시험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주변 시선이 좋을 리 없었다. 심지어 친구들도 '어차피 넌 안 될 거니까 그냥 수업이나 들으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확고한 목표를 정한 안 대표는 무서운 기세로 공부에 몰두했고, 2년 만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더 높은 곳을 향한 꿈

공인회계사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었고 보수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안 변호사의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었다.
모든 것을 회계적인 숫자로 계산해야 하는 것도 성향에 맞지 않았고, 이왕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가면서까지 하는 일이라면 좀 더 공익적이고 사회적으로 많은 기여를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의 눈에 띈 것이 '사법시험'이었다.
안 변호사는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사회 현안에 대해 치열한 법리 토론을 하던 사시 준비생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던 기억을 떠올렸다.
게다가 마침 당시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드라마로 꼽히는 '모래시계'가 방송됐던 때라서, 극 중 강우석 검사와 같이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저런 직업이라면 인생을 걸고 도전해볼 만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안 변호사는 가족과 지인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고난이 시작됐다.

 

고난과 역경 끝에 합격한 사법시험

안 변호사는 처음 지원한 사법시험에서 근소한 점수 차이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다시 응시했을 때도 1차 시험에는 합격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사법시험도 몇 년만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사법시험은 우리나라의 국가고시 중에서도 가장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시험이다. 보통의 각오로는 합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 보니 모든 것을 걸고 시험에 올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번번이 시험에서 떨어졌고 결국 공인회계사의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사이에 회계 시장이 바뀌어서 복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며칠을 수소문한 끝에 겨우 다시 공인회계사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새로운 회계법인에 입사를 약속하고 돌아오던 그 날은 최근에 본 시험 점수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합격 커트라인과 안 변호사의 점수 차이는 고작 0.38점. 차라리 큰 격차로 탈락했다면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을 텐데,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운 점수였다.
결국 그는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면서 계속해서 사법시험 공부를 이어나갔다.
수차례 시험에서 떨어지다 보니 이제는 요령도 생겼다. 좋아하는 술도 끊고, 이 정도 하면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부에 매진했다.
그렇게 안 변호사는 5년 반 만에 4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그의 나이 36세였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꿈에 그리던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안타깝게도 안 변호사는 이미 검사로 임용될 수 있는 나이를 넘긴 후였다. 드라마 속 '모래시계 검사'의 꿈을 뒤로한 채 그는 변호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동기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법조인이 됐던 터라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먼 길을 돌아온 그의 인생 경험들은 오히려 변호사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특히 공인회계사 경력이 있다 보니 남들보다 거래처 확보에 용이했고, 기업 고객들도 줄을 이었다.
안 변호사는 기업의 지배 구조와 관련된 소송, 회계장부 열람 청구 소송 등 배경 지식이 없으면 맡기 어려운 일들을 수차례 담당하며 회계 분야의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에는 대규모 M&A를 두 건이나 성공시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2016년은 매우 고무적인 해였다"면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였는데 업무 영역이 넓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소박하지만 진실된 꿈

안성용 변호사의 꿈은 현재 운영 중인 법무법인을 잘 이끌어가며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안 변호사가 설립한 법무법인의 이름 '광안'도 '세상을 널리 편안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 이름에 걸맞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안 변호사의 바람이다.
정치권·공직으로의 진출을 꿈꾸는 여느 법조인들과 비교하면 참 소박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오래전부터 고향인 충북 보은 지역에서 장학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교회에서도 각종 구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변호사는 과거 대학 재학 시절 보은장학회 장학생으로 선발됐었지만 자신보다 생활이 더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양보한 바 있다.
지금도 그는 매년 장학회에 장학기금을 기탁하고 수시로 전문직업인 특강을 열어 고향 후배들의 깊은 존경을 받고 있다. 또한 장학금 수혜자 모임에 적극 참여하며 고향 후배들의 멘토가 돼주고 있다.
안 변호사는 "리더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이라며 "법조인으로 이름을 떨치는 것보다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교회에서도 서리 집사의 위치에 만족해하며 더 높은 직분을 맡지 않는다고 한다.
안 변호사는 "법무법인에서는 내가 대표지만 장학회나 교회에서는 작은 구성원"이라면서 "구성원으로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자는 마인드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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